규제 완화와 규제 최신화의 차이

2019년 7월 9일 업데이트됨

(본 글은 크립토MBA 김문수 주임교수가 중앙일보 조인디에 제출한 원문으로 실제 컬럼은 편집국의 검토를 거쳐 아래 링크에 게재되었습니다. https://joind.io/market?id=300 )




한국의 암호화폐 기업가들이 가장 목말라 하는 것이 명확한 규제입니다. 암호화폐 산업의 명확한 규제는 언제쯤 이루어질 수 있을까요? 힌트를 얻기 위해 다른 산업의 규제 사례를 찾아보면 생각보다 훨씬 어려운 문제임을 알 수 있습니다.


스마트폰으로 가사서비스를 신청하면 3-4시간 집중적인 청소를 받을 수 있는 모바일 가사서비스가 인기입니다만 정작 가정을 방문해 청소해주시는 분은 근로자로 인정받을 수 없습니다. 1953년에 만들어진 근로기준법이 11조에 가사근로자에 대해서는 근로기준법을 적용하지 않는다고 못 박아 놓았기 때문입니다. 가사서비스 기업이 가사근로자 분들을 직접 고용하여 4대 보험을 지원해드리고 싶어도 할 수 없습니다. 파견법 위반이기 때문입니다. 파견은 파견법에 허용된 업종만 가능한데 건물 청소는 허용 업종에 포함되어 있지만 가사 청소자는 허용 업종에 포함되어 있지 않습니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고용노동부가 2017년에 가사특별법을 발의했지만 국회의 관심 부족으로 계류와 자동 폐기를 반복하며 아직까지 입법이 진행되지 않고 있습니다. 최근 박용만 대한상공회의소 회장이 국회를 방문해 조속한 처리를 요청한 것 중 하나도 가사 서비스 산업 선진화법이었습니다.


안타까운 해상 사고에서 구명 조끼에 GPS 위치 발송기가 달려 있으면 귀중한 생명을 한 명이라도 더 구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렇지만 ‘개인 인명구조용 해상조난 신호기’를 개발한 스타트업은 최근 규제 샌드박스에서 60대까지만 제작해서 기술력을 입증해야 하는 실증 특례를 받았습니다. 60대라는 기준의 과학적 근거는 과연 무엇일까요? 이 기업은 60대를 제작하는 것만으로 다음 제품의 기술을 연구할 수 있는 안정적인 재원을 창출할 수 있을까요? 생명을 구하고자 하는 제품을 개발하는 기업이 60대가 아닌 100대를 만들어 시험하면 처벌을 받아야 하는 것인가요? 선진국이라면 어떻게 했을까요?


미국 실리콘밸리에서는 초기 기업에게 'SAFE’ 방식으로 투자를 하는 것이 일반적입니다. SAFE(Simple Agreement for Future Equity) 방식은 초기 기업의 불명확한 기업가치를 정하느라 시간을 허비하지 않고 일단 먼저 투자한 후 회사가 성장한 후 다음 투자를 받을 때의 기업 가치에서 일정 비율을 할인 받는 제도입니다. 이처럼 미래 신뢰 기반의 약식 투자 방식은 미국에서 2013년부터 시작되었고 투자자와 기업가의 시간을 대폭 아끼며 큰 호응을 받았습니다. 그렇지만 한국의 유망 스타트업들은 글로벌 투자자가 SAFE 방식의 투자를 제안하면 관련 법규의 미비로 투자를 유치할 수 없었습니다. 6년이 지난 2019년에서야 중소벤처기업부와 법무부가 SAFE 방식이 한국의 상법 체계를 위반하는 것이 아니라는 유권 해석을 내 놓았습니다. 만약에 반도체 산업에서 이런 일이 일어났으면 우리 사회는 6년이라는 격차를 인내할 수 있었을까요?


규제 완화는 정권이 바뀔 때마다 이어지는 단골 구호입니다. 규제(規制)를 한자로 풀이하면 규칙(規則)과 제도(制度)이고 완화의 뜻은 느슨하게 한다는 것입니다. 악법도 지켜야 하는 법치국가에서 법으로 정한 규칙과 제도를 스스로 완화하는 것은 자기모순적인 한계가 있습니다. 4차 산업 혁명이라고 불리울 만큼 빠르게 변화하는 시대 속에서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규제의 완화가 아니라 규제의 ‘최신화’입니다. 규제를 시대 변화에 맞게 최신화하는 것은 법의 권위를 지키는데 도움이 됩니다. 시대가 변했는데 과거의 규제 문장을 기반으로 합법과 위법의 잣대만을 들이대면 미래 세대의 지지가 감소하고 국가적인 손해가 발생합니다.

규제를 완화하는 것은 관리적인 관점이고, 규제를 최신화하는 것은 전략적인 관점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규제를 최신화하려면 더 많은 학습과 치밀한 준비가 필요합니다. 시대에 맞는 규제를 설계하고 국가간 경쟁에서 대한민국이 주도할 수 있도록 규제를 설계하는 것은 국가의 전략을 설계하는 것입니다.

파충류나 갑각류처럼 성장하면서 탈피를 해야 하는 동물이 제 때 탈피를 못해 신체 일부가 괴사하는 것을 탈피 부전이라고 합니다. 유튜브가 한국의 동영상 생태계를 잠식했고 페이스북의 암호화폐 리브라가 디지털 금융 패권의 야망을 드러내고 있습니다. 기적처럼 산업화와 민주화를 달성해 온 대한민국이 과학기술의 발전을 철학적으로 소화하지 못해 탈피 부전을 맞이하는 것은 자존심이 상하는 국가적 손해입니다. 경쟁력 있는 규제 설계는 국가 전략의 설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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